시즌 1, 에피소드 3: 1. “첫 대구 잡았다이~!” “눈물 콧물 빼면서 잡아도 애들은 그걸 몰라!”-외포리 마을 첫 대구잡이의 염원 올 해 겨울 외포리 마을에 첫 대구잡이 배가 떴다. 거제 대구가 걸려드는 그물은 보 름전 말뚝을 박고 2~3일전 쳐놓은 일명 ‘호망’! 새벽 바다를 가르며 달려간 외포리 연안, 그물을 거두니 물메기, 가오리, 자리돔 등 다양한 생선들! 그중 가장 크고 양반 같은 모양으로 꿈틀대지 않는 생선이 있다. 바로 대구! 큰 입을 가진 생선이라해서 대구(大口)라는 이름처럼 입도 크고, 몸집도 큰 심해 생 선. 북태평양 연안까지 올라갔다가 12월이면 한류타고 잔잔한 거제 앞바다에 산란 을 위해 내려올때 외포리 어부들은 그 대구떼 덕분에 긴겨울을 살아간다. 총 68척의 어선이 하루 평균 3.5톤의 대구를 수확하는 살아있는 겨울! 1월 전국에 대구 금어기 가 내려져도 최대 생산지인 외포리는 예외다. 그렇기에 외포리사람들은 조상대대로 이곳 대구맛이 최고라 여기며 살아왔다는데... 첫 대구배가 들어오면 마을 젊은 아낙들은 바빠진다. 1마리 7-8만원을 호가하는 좋 은 대구 십여마리를 잡아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기 위한 것. 살아있는 수컷 대구 의 고니(이리)와 부드러운 살로 끓이고, 지지고, 볶아낸 외포리만의 전통음식들이 솔 솔 냄새를 피우며 온 마을 노인들을 불러모은다. 대구 맑은탕, 벌겋게 비벼낸 대구 찜, 새콤달콤한 대구회무침, 대구 대가리 지짐까지! 긴 겨울을 바다위에서 보낼 마을 젊은이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것은 어르신 들 몫. 첫대구를 반기는 거제도 외포리 토박이들만의 추억과 기원의 음식을 맛본다. 2. “여기는 홀빡 자연산!” 생선이 펄펄 뛰는 다라이 아지매들의 새벽 5일장 첫 손님을 기다리며 새벽을 여는 곳은 또 있다. 새벽 6시, 아직 어두운 장터에 다라이 (고무 대야)를 내리는 여인들이 자리를 잡으면 거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5일장 - 거 제장의 입구가 만들어진다. 수조가 없어도 펄펄 뛰는 감성돔, 갯가재, 간재미, 낙지 등 거제바다에서 밤잠 설치며 잡아온 해산물이 그득하다! 해가 뜨면 200여 미터 남짓 한 복개천 도로에 난전이 펼쳐지고, 손님과 상인들로 번잡해지는데... 이병진의 눈 에 들어온 허연 수염의 갓쓴 할아버지는 임진년 길흉화복을 알려준다는 ‘생활달력 (민력)’을 팔고 있고, 거제장과 진주장을 번갈아 다니는 동태장수와 귤파는 제주 아 지매는 반나절도 안되어 다 파는 재미에 거제장을 찾는다고 한다. 새벽부터 오전내 내 구경하던 장터에서 출출한 속 달래러 들어간 순대국밥집. 이곳에서 이병진은 깨 닫는다. 거제에서 만난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3. “굴 까러 가세~”- 거제의 소리와 모습을 40여년째 기록해온 합천 사나이! 거제의 풍요를 맛보고 걸어나오는 이병진의 귓가에 들려온 노랫소리 - “굴 까러 가 세!” 거제 처녀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굴을 까고 있으면 총각들이 모여들었다는 이 야기를 나누며 70이 넘은 할머니들은 이제는 민요가 되어버린 노래를 잊을까 바닷가 에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 속에서 소형 녹음기를 들고 있는 한 노인이 있다. 고향은 합천이지만 1968년부터 거제 공무원으로 살아가다가 거제처녀를 만나 일가 를 이루고 토박이가 되기로 한 이승철씨. 그의 집에는 사라져가는 거제 민요 수백곡 의 녹음테이프와 수백장의 사진, 수천권의 책들이 있었다! 그의 발목을 평생 잡은 거 제의 매력은 역사속에 숨어있다. 거제는 고려시대부터 왕들의 유배지였으며 한국전 쟁(6.25)에는 포로를 수용했고, 현대로 오면서 조선소 단지로 8만명의 외지인들까지 품어내는 땅! 그 매력에 빠져 40여년간 10여권의 책을 낸 이승철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4. 24만 거제인들 중, 8만명 삶의 터전 – 조선소! 거제 조선소 사나이와 해녀가 되고 싶은 베트남 며느리 이야기 1년 남짓 대우 옥포 조선소에 다니며 배의 선체 운송에 수신호를 해주는 조정용씨는 아들 둘과 어머니,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거제 사나이! 쉬는 시간이면 집에 전화하는 게 요즘의 낙이다. 가끔 7개월전 허리 수술하고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해녀 시어머니 의 해녀복을 빠는 그녀는 멀리 베트남 강촌마을에서 시집온 며느리 ‘티나씨(브이티 느)’. 그녀는 거제에 와서 꿈이 생겼다. 자신을 딸처럼 여겨주는 시어머니처럼 해녀 가 되고 싶은 것. 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는 무뚝뚝하게 반대하고 있다는데... 하루 에 2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티나씨가 장에 간다. 해녀복을 갖고 싶은 그녀가 야심차게 저녁 메뉴를 만들어 가족들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것! 보글보글 끓여낸 고 등어찌개와 잡채로 과연 남편의 마음이 변할까? 거제에 와서 새로운 고향을 삼은 베트남 며느리 티나씨네 이야기를 만나보자. 5. 거제로 장가온 진주 사내를 첫 눈에 반하게 한 ‘공곶이’ 거제로 장가와서 일가를 이루고 50여년을 한 자리에서 살고 있는 분도 있다. 1957년, 진주에서 거제처녀와 한달만에 결혼하여 신혼여행 대신 산책 나왔던 거제 도 ‘공곶이’에 반해 맨손으로 이 땅을 숲으로 만든 사나이. 강명식 할아버지와 지상 악 할머님. 하루종일 나무 묘목을 돌보는 할아버지 대신 바닷가 암벽위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 로 식사를 준비하는 할머니는 진주 남편 덕분에 거제도 공곶이가 ‘거제8경’중 하나 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 본인도 공짜로 공곶이를 만나셨기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돈 한푼 받지 않는다는 넉넉한 마음은 이미 거제도와 닮아있다. 수선화 두 그루로 시작 해, 동백꽃이 흐드러지고 종려나무가 길을 낸 숲을 할아버지의 은하철도999를 타고 이병진이 여행해본다. 6. 서로를 품은 모녀, 해인정사 주지 스님과 공양주 어머니 거제도에 있는 작은 절 해인정사는 작은 절이지만 가마솥에서 익어가는 취나물 밥 에, 독마다 직접 담은 장이 익어가는 풍성한 절이다. 이 절의 공양주 보살은 머리가 하얀 엄기남 할머니. 그녀의 야무진 손맛이 유명해 신도들도 배우러 온다는데... 그 런 공양주 할머니의 손맛의 비결은 바로 주지스님을 향한 애틋함이다. 알고보니 공 양주 할머님은 경기도 여주분이다. 어느 날 사라진 딸을 10년 후에야 만났지만 스님 이 되어 있었고 딸과 함께 15년 이상 노보살과 스님의 사이로 지내고오 있다고. 속세 를 버린 딸과 천륜을 버릴수 없었던 어머니를 품어준 곳은 거제였다. 오늘도 하루하 루 집착하지 않는 삶을 배워간다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거제의 땅이 외지인에 게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본다. 남쪽의 따듯한 날씨, 풍성한 바다의 산물로 넉넉한 희망을 선물하는 땅. 통영과 부산에 각각 큰 대교로 육지와 연결된, 열려있는 섬 거제도. 귀양 오는 사람, 한국전쟁 때 포로가 된 사람, 부자의 꿈을 안고 조선소로 오는 외지인들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어 ‘크게 구하고 품어주는 거제도’의 품으로 들어가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