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대한민국의 최전방 DMZ까지는 차로 한 두시간 거리. 마지막 남은 냉전의 유산은 우리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2중, 3중의 철책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눈 경계가 되었다. 갈등의 공간 DMZ에 사는 생명들도 서로 대립한다. 멧돼지는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심지어 동족이라도) 식성으로 DMZ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고, 꿀벌들은 애벌레를 노리는 장수말벌이라는 거대한 천적을 막기 위해 수천, 수만 년간 터득해 온 비장의 방어 전략을 펼친다. 지구상에서 가장 삼엄한 경계선 안은 인간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덕분에 지난 66년간 이곳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온전한 생명들만의 공간이 되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의 새끼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높은 나무에서 몸을 던지고 달팽이를 사냥하던 징그러운 애벌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는 반딧불이로 변신한다. 인간이 이념으로 갈라놓은 경계는 생명들에겐 무의미하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저어새와 두루미에게 DMZ는 다음 세대를 잇기 위한 투쟁과 사랑의 무대일 뿐이다. 전쟁으로 생겨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낙원이 된 DMZ. 폭 4km, 길이 248km, 면적 907㎢로, 민간인통제구역과 접경지역까지 포함하면 제주도보다 넓다.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땅, 인간이 물러난 이 땅에선 수많은 생명들이 치열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평화의 시대, 나아가 통일의 미래에 DMZ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