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16
에피소드 99
[하늘이 주는 만큼 - 안반데기 고랭지마을 첫 수확]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인 강릉 ‘안반데기’ 고랭지마을. 해가 거듭될수록 이상기온현상으로 배추 값은 요동 치기 일쑤고, 특히 비가 많았던 올해는 예년에 비해 수확이 늦어졌다. 배추 출하시기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날씨. 평생을 배추 농사만 지었어도 출하시기도, 배추 가격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 하루에도 수십 번, 변화무쌍한 날씨를 자랑하는 산속 고랭지마을애서의 첫 수확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 구름위의 땅, ‘안반데기’ 해발 1,100m, 험준한 태백산맥 자락에 위치한 강릉 ‘안반데기’ 마을.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굽이굽이 골을 이룬 푸른 배추밭 물결은 절로 감탄사를 쏟아내게 한다. 1965년 이곳에 온 화전민들은 산비탈의 자갈투성이 밭을 일일이 손으로 개간해, 현재 198ha(약 60만평)의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로 만들어 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이상기온 현상으로 고랭지 농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수확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는데... 하지만 추석 대목을 놓칠 수 없기에, 궂은 날씨 속에서 올해 첫 수확을 시작한다. - 안개비 속에서 만난 안반데기 사람들 다큐 3일이 안반데기 마을을 찾은 첫날, 한동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수확이 늦어지면 배추들이 출하할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영양제를 살포하는 것이 주된 작업. 그러나 비가 내릴 때는 이마저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내일 있을 수확작업을 위해 배추밭을 둘러보고 있는 박인복(55세)씨. 비 때문에 작업이 늦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그는 하루 세 번, 매일 배추 상태를 점검하러 나온다. 작년에는 늦게 내린 비로 다 큰 배추들이 썩어버려 밭을 그대로 갈아엎었다며, 몇 달간 잠을 못 잘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는 박인복 씨. 올해는 비가 배추들이 어렸을 때 많이 와서 다행이라며, 이렇게 평균 정도로 성장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한다. 안개비 속에서 외양간의 소에게 여물을 주는 김관영(53세)씨와 사위 박정식(33세)씨. 28가구가 사는 안반데기 마을에서 씨감자 농사를 하는 다섯 가구는 밭가는 기계 대신 소를 키우고 있다. 한번 비가 온 후에 다시 흙이 마를 때까지는 감자를 캘 수도, 밭을 갈 수도 없다는 씨감자 농사. 잦은 비 때문에 올해 작황은 최악이지만, 아직 파란 싹이 돋아있는 감자들을 흙으로 덮어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 여전히 손으로 이뤄지는, 안반데기의 첫 수확 일요일,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 안반데기 마을. 새벽 3시, 월요일 경매를 위해 배추를 싣고 갈 트럭들이 마을 입구부터 북적댄다. 좁은 배추밭 사이길에 줄줄이 늘어선, 30대가 넘는 5톤 대형 트럭들. 조금이라도 정체가 되면 너나할 것 없이 경적을 울려대, 마을은 아수라장이 된다. 오전 안에 끝내야 하는 수확 작업. 동원된 작업자들은 굴삭기도 구르고, 소도 구른다는 경사진 밭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칼바람을 맞으며 작업을 한다. - 하늘이 주는 만큼 먹고 사는 농심 오전 내내 작업을 했던 트럭들이 서울로 떠나고, 다시 고요함을 찾은 안반데기 마을. 오후가 되자,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히더니 마침내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햇살이 반가울 겨를도 없이, 영양제를 뿌리고 미뤄둔 밭일을 부지런히 하는 마을 사람들. 사람 욕심으로만 할 수 없는 것이 농사이기에, 땅이 허락하고, 하늘이 주는 만큼 거두는 것을 진리로 알며 살아가는 안반데기 배추마을 사람들이다.